몬돌끼리의 두번째 날.

# 새벽에 닭소리에 깼다. 어제는 있는 옷을 다 꺼내어 입었기에 그다지 춥지 않게 잤다. 그러나 나의 숙소는 닦장 옆. 어김없이 4시면 일어나는 그 닭들의 소리에도 기도가 나왔다. 이곳에 우리와 주께서 동행하시고 있다. 우리가 주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기다리고 계산다. 우리는 스스로 배우고 있다. 물론 주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에서 살짝 간이나 보는 정도겠지만

 (1) 불평을 원치 않으시며 -> 이는 분위기를 흐리고 갈등을 일으킨다. 나뉘는 마음이 생긴다.
 (2) 기쁨을 주신다. -> 아름다운 경진이의 바이올린 소리와 코끼리 여행을 통해 본 너무 아름다운 자연. 사탄이 일을 하던 뭘 하던 두렵지 않다.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주를 의지함으로 시험을 이기고 힘을 얻고 감사함으로 주께 영광돌릴 것이다. 주님 감사해요! 영광 받으세요!


프놈족 사역을 갔다. 넓다란 초원에 덩그라니 있는 빈집은 아마도 교회였을까? 우리들의 병원이 되었다. 내가 간단한 짐을 나르는 순식간에 병원이 셋업되었다. 치과와 병원, 약국, 접수대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약국까지 줄을 세우는 역할을 맡았는데 열심중에 기쁨이 생겼다. 내일은 꼬옥 인사로 시작해야겠다. 그들은 내가던지는 짧은 말도 기뻐한다.
목띠니, 짬 :p

코끼리마을은 코끼리를 통해 목재운송사업을 주 업으로 하는 마을인데 그 임금이 얼마 되지 않았다. 흥정을 하여 코끼리 6마리를 하루동안 빌려쓸 수 있게 되었고 - 우린 코끼리를 타고 밀림의 겉?을 돌아다녀볼 수 있었다.

코끼리녀석, 참 힘도 세고, 성격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혹사당하더라.
친절하신 주민은 밀림 중간 중간 미니바나나를 따주시거나, 나뭇가지를 치워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밀림탐험이란 흥미로웠다.

점심시간에 이어 손님이 없는 시간 어른들도 코끼리를 타러 갔고, 아이들은 멀뚱히 들판속의 빈집, 아니 교회, 아니 병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ㄱ진이가 가진 바이올린이 눈에 띄였다. [야, 그것좀 켜봐.] 그렇게 쉽게 시작했었다. 그 아름다운 연주는.

ㄱ진이는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너무 겸손해서 유학파?인지도 몰랐고, 묵묵히 시키는 일을 잘 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모든것에 놀라는 것에 옆에서 보던 내가 재미있던 차였다.

경진이는 가지고 있는 악보 몇개를 연주했는데 지친 여행길에 얼마나 피로를 풀어주었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느다란 바이올린선율이 늘어진 오후의 빈집을 메웠다. 엉성한 벽과 판자사이로 바람이 불어왔고, 햇살이 들어왔고, 음악이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갔다. 판자를 뚫고 마음을 뚫고, 우리의 눈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아득한 고향이 생각나고, 평온한 천국이 생각났다.
나는 정말 천국이 생각났다. 트로이메라이부터 한곡 한곡. 아름다운 곡들과, 성가들과,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가슴에 남았다.

선교사님이 돌아오셨을때, 이런 (생)음악을 들어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며 너무 감명깊어하셨다. 병원을 재개해야했지만 정말 자꾸 자꾸 듣고싶어하셨다.
경진이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음악하는 사람들이 줄수 있는 기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채
다시금 병원은 열렸다.

저녁 사역까지는 정신없이 흘렀고, 이젠 제법 익숙해진 업무들.
누군가  PMP를 잃어버려서 찾느라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 밤엔 결국 호텔로 옮겼다.
좋은 곳에서 자서 또 기뻤지만 비지니스를 아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 게재된 사진은 제가 촬영한 것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이 촬영한 것이 섞여있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촬영자에게 있습니다.


2007/01/29~2007/01/31을 몬돌끼리에서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이다.

Day 1.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너무 추웠더니 머리가 다 얼얼하다. 하지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마을은 프농족이 사는 100가구 정도의 정말 작은 마을 "닷담 마을" 이다. 그 추웠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차로 20분정도 떨어진 곳이다. 설레임과 모기약(ㅋㅋ말라리아 무서워서) 을 가지고 닷담마을로 향했다. 우리가 동네 앞마당 쯤 도착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왔다. 어리버리했던 것도 잠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사진찍기를 즐긴다. LCD에 나오는 자신의 얼굴을 신기해하는 듯 한다. 막 와서 찍어달라고 하고 그런다.;; 단 이메일 따위 없다는거 -_-;)

아이들이 아주 작고 장정들의 키도 나보다 작다. 감자 등으로 자급자족 하지만 아무래도 영양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도시에 사는 빈민들도 우리나라 어린이의 발육상태보다 2년정도 낮다고 하니, 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이 체구도 나보다 작나보다.

닷담마을

오빠일까 언니일까

동네 꼬마들


봉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의료봉사와 일반 봉사다.
의료봉사는 접수처, 병원, 약방, 치과로 이루어진다. 테이블 3개만 놓으면 기초 병원이 완성되며, 치과는 이동진료용 치과의자 세트가 설치된다. 나무 그늘 한쪽에 병원이 셋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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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처- 이름, 나이, 병세를 적어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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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처 - 캄보디아인이 영어로 통역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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