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된 사진은 제가 촬영한 것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이 촬영한 것이 섞여있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촬영자에게 있습니다.
Day 1.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너무 추웠더니 머리가 다 얼얼하다. 하지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이다. 그 추웠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차로 20분정도 떨어진 곳이다. 설레임과 모기약(ㅋㅋ말라리아 무서워서) 을 가지고 닷담마을로 향했다. 우리가 동네 앞마당 쯤 도착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왔다. 어리버리했던 것도 잠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사진찍기를 즐긴다. LCD에 나오는 자신의 얼굴을 신기해하는 듯 한다. 막 와서 찍어달라고 하고 그런다.;; 단 이메일 따위 없다는거 -_-;)
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도시에 사는 빈민들도 우리나라 어린이의 발육상태보다 2년정도 낮다고 하니, 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이 체구도 나보다 작나보다.
의료봉사는 접수처, 병원, 약방, 치과로 이루어진다. 테이블 3개만 놓으면 기초 병원이 완성되며, 치과는 이동진료용 치과의자 세트가 설치된다. 나무 그늘 한쪽에 병원이 셋업되었다.
 병원 - 간호사인 해련언니^^의 피부병 치료.. (아, 피는 너무 무서워.) |  병원 - 의사이신 박선생님과 통역인 "비싸이" 양, 간호사 안선생님 |
 치과 - 나의 완소남 최선교사님(모자) ^^ 치과의사로서 캄보디아로 이주하여 무료봉사 중 |  치과 - 이동식 치과체어, 치과의사 문선생님과 최선교사님의 치과스텝 현지 "돌리" |
 약국 - 내가 너무 존경하게 된 윤교수님♡
|  약국 - 약국 스텝과 통역해주신 다일캄보디아 직원들 |
나는 일반 봉사단원으로서 처음엔 팀에서 준비해간 풍선아트를 보여주었다. 가장 쉬운 왕관이 아무래도 주 메뉴가 되었다. 뻘쭘해하던
고등학교생들 팀원도 즐겁게 봉사에 임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에 풍선 매듭을 못짓는 귀여운 녀석들이 있다는 것 (-_- 경진포함). 여튼 닥치니까 다 하더라. 아이들에게 풍선을 많이 불어주고 싶어하면서도 매듭때문에 시간이 걸려서 안타까워했었다. 이들의 마음이 이쁘다. 밀려드는 애들 때문에 풍선은 곧 떨어지고 젊은 애들(10대)은 벌판에서 축구를 하고 수건돌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세대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난 차마 그 땡볓에 축구를 할수가 없었다규. (ㅡ_ㅜ)
 풍선부는 것도 나이들어 힘든 송대장 |  막막 신나서;; 한컷 |  풍선을 기다리는 아이들 |
 강강수월래 하는 아이들..너무 금방 하나가 된다. 이들은 뭐가 그리도 재밌었을까. |  축구하러 벌판으로 뛰어가며 신나하는 젋은 것들(사실은 너무 순수한 고교생☆~. 금방 동화된다.) |
 축구 끝나고 사진찍는;; |  헤어지기전 기념컷이기도 했고 |  ^-^ 경진이와 소중한 동행이 되다 |
나의 포지션은 아주 애매했는데 이는 참 신기한 발견이었다.
영그룹(10대)과 올드그룹(40대)에 속할 수 없는 어중간 함. 팀 소개를 잠깐 하자면, 영그룹은 봉사적 목적 및 봉사활동점수를 따기위해 조인한 녀석들이고, 올드그룹은 대부분 전문의료인(의사, 치과의사, 약사, 교사 등)으로 구성된다. 사실 8박 9일 해외를 이렇게 봉사로 보낼 수 있는 "생산인구"(20대~30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애매한 내 포지션이란게 참 "신기한" 발견이었다. 적극적인 성격에 실리적인 학문을 전공했던 나는 인생에서 어딜가나 제법 "쓸모있는" 인재였다. 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곳, 이 척박한 곳에서는
난 힘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개인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즉, 딱 맡아서 할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내 사회적 위치도 그러했다.
아직 무엇에도 전문가가 아니었고, 아이들처럼 제대로 순수하지만도 못했으니까.의료팀에 비해 난 비전문가였고 캄보디아 꼬마들과만 어울리기엔 나름 고급인재여서 결국 이팀 저팀 불려다니는 대로 일을 했다. 약봉지에 약을 분류하거나 접수된 환자를 의사하게 이후 약사에게 데려다주는 일을 하는 것이 고급인재가 하는 일이다. 풍선을 불고 아이들과 수건돌리기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순수한 10대들의 몫이다. 하지만 둘다 즐겁다. - 둘다 분명히
가치롭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신기한" 경험으로 어리버리하고 있을 때, 영어를 할 줄 아는 게스트하우스 직원으로 부터 현지어(캄보디아어)를 배웠다. "목띠니"는 이리로 오세요. "짬"은 기다리세요 이다. 후일 이 두마디가 얼마나 나의 활동에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언어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풍선을 불고 있으면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엔 풍선이 다 떨어져서 곤란했다. 그 다음부터는 풍선 보수공사에 들어가서 만든 것을 또는 풀린 것을 재보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ㅋㅋ 재밌어. 두개 가진 욕심꾸러기들로 부터는 무서운 얼굴로 뺏어서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이 동생들을 참 잘 돌보는데, 10살도 안된 여자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기도 하고, 애써 줄써서 받은 풍선을 동생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정이 있는 곳이다.
환자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감기와 피부병, 삐콤씨 환자가 주요 환자이다.
워낙 모래바람이 많이 불고, 초가집에 살기때문에 피부상처가 덧나기 쉬운 환경일 수 밖에 없다.
삐콤씨 환자란 꾀병 환자를 뜻한다. 의료팀이 거의 들어오기 힘든 오지인 이곳은 의사만 왔다하면 "약 쟁여두기"에 들어간다. 한번에 이 병 저병의 약을 타다가 축적해두는 것인데 - 약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을 위해 많이 나누어 줄 수 없다. 아플때 그간 가지고 있던 약을 통째로 다 - 증상과 상관없이 -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들의 증조 할머니가 "그렇게 해서 병이 나았더라"라고 전설 한마디만 남겨주면 외국인 의사들의 주의따위는 공중에서 분해되어버리니까.
그런 꾀병 환자분들을 위해 충분한 삐콤씨와 어린이용 비타민정이 준비되어있다. ^^ 닥터황(황장로님)께서는 어떤 처방전에는 병세도 안적고 "거짓말" 세 글자를 적어두셨을 때도 있었으니까.
한나절이 가고, 밥만 가득한 도시락을 먹고 해가 뉘엇뉘엇 할때, 현지 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의 드라마(공연)을 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고 - 뭐랄까 가슴이 뭉클해져서, 방해될까봐 박수도 치지 못했고, 찬송도 따라부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뭉클했다.
돌아오는 길에, 근방에서 굉장히 유명하다는 무슨 폭포에 갔다. 우기때는 정말 아름다운 폭포라고 하는데 - 건기라 물이 별로 없었다. 폭포로 가는 길은 꽤나 넓은 숲으로 되어있는데 하늘 끝까지 뻗은 듯한 멋진 수목들 - 아. 감동이다. 그 곳을 걸어갈 때, 나도 모르게 제인에어의 몇 장면들이 스쳐갔다. (애석하게도 영화론 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묘사했던 몇 장면들. 특히 절망에 빠진 에드워드가 제인을 향해 절규할 때, 제인은 아주 먼 숲에서 그 환청을 듣는다. 그 숲에서 어딘가에서 들린 에드워드의 목소리를 찾아 함께 할 수 없음에 같이 슬퍼한다. 왠지 그 숲이 - 그 숲만 같았다. 어디선가 그 둘의 목소리가 교차할 것 같은 - 제인에어의 숲을 만났다. (이쯤되면 내 감동이 어떨지 ^^ 알것 같소??? >>ㅑ 아..)
 키다리 나무가 있는 숲 |  어디선가 제인과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저녁식사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어디선가 잡아온 멧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멧돼지에 간장 양념을 했는데 짭짤하게 먹을 만했다. 특히 이곳에서 제공하는 야채스프는 아주 최고의 맛이었다. 이 산지에서 나는 야채가 맛이 한국보다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은 밤새 수다를 떨고, 난 또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해 반팔을 아주 여러겹, 긴팔을 있는 힘껏 찾아서 또 여러겹을 입었다. 해련언니가 밤새 앓아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 아이들은 밤을 새며 캄보디아의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보낸 밤이었다.